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만 제국 (문단 편집) === 여타 유럽국가들과의 비교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017014042884-0297_S0022050710000550_fig5g.gif|width=100%]]}}}|| 거대한 영토에 비해 오스만 제국은 인구가 적은데다 경제적으로도 발달하지 못했다. 오스만의 경제제도는 동시대 유럽에 비해 원시적이었고 조세행정도 극히 비효율적이어서[* 근대국가보다는 [[고대 로마]]와 비슷한 체제였다.] 여기저기 누수가 심각했으며 국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없었다. 연구에 따르면 오스만의 세입은 1500년부터 1800년까지 거의 변동이 없었지만[* GDP 4% 미만] 1800년부터 1차대전 사이 무려 15배나 증가했는데 19세기 서구화 개혁으로 유럽식 제도를 도입한 덕분이었다. 정부 세입은 19세기 후반 GDP 7%를 찍고 1차대전 직전에는 13%까지 증가했다. 최전성기인 쉴레이만 시절 오스만 중앙정부 세입은 은 132톤, 지출은 118톤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440톤, 500톤]에 비해 턱없이 적었고 베네치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방정부의 수입을 전부 합해도 306톤으로 동시대 유럽 열강들에 비해 경제력에서 현저한 열세를 보였다. 17-18세기 서유럽과의 격차는 더 벌어져서 오스만의 세입은 200톤에 머무는 반면 프랑스와 영국은 1612톤과 1370톤을 돌파하여 1229톤의 청나라를 상회했다. 오스만 일개 지방보다 영토와 인구가 작은 네덜란드도 350톤의 세입을 거두었다. 이렇게까지 엄청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경제와 행정이 중요한 요인이지만 서유럽이 이미 동유럽과 중동보다 훨씬 풍요로웠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15세기 서유럽 국가들의 1인당 소득은 오스만 제국의 2-2.5배에 달했고 제국의 부와 재화가 집중되는 이스탄불 임노동자와 서유럽 임노동자를 비교하면 후자의 구매력이 50% 이상 높았다. 17-18세기 서유럽 국가들의 1인당 세입은 오스만의 수배에 달했고 영국은 12배, 저지대는 13배가 넘었다.[* 노동소득도 비슷하게 차이가 났다.] 19세기에 접어들면 오스만 세제의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수십 배에 달하는 차이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런 오스만의 1인당 세입도 동시대 중국과 인도에 비하면 2-3배가량 높았다. 근세 서구와 비서구의 격차는 상상 이상으로 막대하다.][* 같은 유럽 내에서도 서유럽과 동유럽의 격차는 엄청났다. 동유럽 최강국 러시아는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오스만보다 1인당 세입이 적었고 중국이나 인도와 비교해야 할 수준이었다. 러시아의 1인당 세입이 오스만을 넘어서는 것은 서구화가 진행된 18세기 후반의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